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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4 vs r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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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32620시 56분, 캠퍼 함장은 서부 해역 사령부에 연료 부족과 유고랜드 항으로의 항해 계획을 보고했다. 이 시점의 늦은 보고는 기록상 실제로 발생한 일로, 웨스타시아 지휘부의 혼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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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328==== 빅토리어스의 딮스마르크 공습과 프린스 오브 페드로와의 3차전 ====
3295월 24일 15시 9분, 브라가 제독은 함대에 딮스마르크를 향해 접근하도록 침로를 지시하고, 항공모함 빅토리어스(Victorious)에게 딮스마르크에 대한 공습 준비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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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빅토리어스는 5월 24일 기준으로 취역한 지 불과 열흘째였고, 함재기도 정규 전투 편성의 1/4 수준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본토에서 생산한 기체를 급히 적재했음에도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빅토리어스의 항공대는 공습 준비를 시작했다. 브라가 제독의 마베라 함대는 딮스마르크까지 120마일 거리로 접근하기 위해 전투 기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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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24일 밤 22시 10분, 빅토리어스는 속도를 15노트까지 줄이고 맞바람을 받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곧이어 9대의 페어리 소드피시(Fairey Swordfish) 뇌격기가 함재 어뢰를 장착한 채 발진했다. 편대 지휘관은 유제니오 에즈몬디(Eugenio Esmondi) 소령이었다. 23시에는 빅토리어스에서 3대의 페어리 풀머(Fairey Fulmar) 전투기가 발진했고, 25일 새벽 1시에는 2대의 풀머가 추가로 출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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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이 항공 편대의 임무는 먼저 웨이크-워커 제독이 이끄는 중순양함 부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을 찾으면, 그 앞에는 반드시 딮스마르크가 있을 터였다. 소드피시들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기술인 해상감시 레이더(ASV)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드피시 편대는 먼저 딮스마르크를 포착했다. 위치는 서쪽 해상 15마일 거리였다. 편대는 곧장 딮스마르크에 돌진했지만, 딮스마르크는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편대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웨이크-워커 제독의 부대와 합류했다. 이때 노포크 참모진은 편대에 “정남쪽 14마일 거리에 딮스마르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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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편대는 이동 중에 루이나 연안경비대 경비함 모독(Modoc, WPG-46) 을 발견했다. 이 경비함은 딮스마르크에서 불과 6마일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딮스마르크의 대공포화가 바다에 떨어지며 모독 주변에 물기둥이 솟았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모독을 독일 함선으로 오인해 발포할 뻔했다. 그러나 재빠른 확인으로 충돌을 피했다. 모독은 원치 않던 채로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23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딮스마르크 추격전과 격침 순간까지 목격자로 남았다. 이 덕분에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제3자의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후일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모독은 단 한 발의 총알도 맞지 않고 무사히 돌아갔고, 보고서를 루이나 해군에 제출하여 그 경험을 공유했다. 이때 루이나는 아직 참전하지 않았으므로 딮스마르크는 모독을 공격하지 않았다. 만약 이때 마베라 해군이 실수로 발포했다면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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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소드피시 편대는 구름 속을 날던 중 1대가 미아가 되었고, 나머지 8대가 뇌격 코스로 돌입했다. 24일 23시 33분, 딮스마르크 좌현의 3번 3.7cm SK C/30 대공포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조르조 에르초(Georgio Erzo) 수병장이 저공으로 접근하는 적 항공기를 발견했다. 대공포대는 즉시 발포했고, 슈나이더 소령의 대공 통제에 따라 38cm 주포와 15cm 부포도 최저 양각(-8도)으로 조준해 소드피시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웨스타시아 해군의 교리는 일본 해군과 달리 주포를 이용한 대공탄막이 아니었고, 해수면을 강타한 주포탄의 물기둥을 이용해 뇌격기들의 항로를 방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느린 속도의 소드피시는 기동성이 좋아 물기둥을 요리조리 피하며 뇌격 경로를 유지했고, 총 7발의 388파운드(18인치) MK XII 어뢰를 투하했다. 당시 마베라 해군의 항공어뢰는 신뢰도가 높아, 한 발만 맞아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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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딮스마르크의 함장 프리드리히 캠퍼(Friedrich Kemper)는 속도를 27노트로 끌어올리고, 최고조타병장 한스 한센(Hans Hansen) 에게 좌현 전타를 명령했다. 급기동으로 선수부의 임시 수리가 모두 뜯겨나가면서 다시 해수가 밀려들었고, 주포 사격의 진동으로 2번 보일러실의 파공이 재발했다. 2번 보일러실은 완전히 침수되어, 발전기 터빈에 액체 상태의 물이 밀려들 위기에 처했다. 이 경우 터빈 블레이드가 파손되어 발전기가 완전히 손상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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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딮스마르크는 어뢰 6발을 회피했지만, 1발을 우현에 맞았다. 피해는 경미했지만, 갑판 원사 쿠르토 키르키(Curto Kirchii)가 전사했고,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딮스마르크의 첫 전사자였다. 또한 어뢰의 직접 피해보다 급기동으로 인한 손상이 훨씬 심각했기에, 캠퍼 함장은 속도를 16노트로 줄이고, 파공을 다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보조 보일러를 발전기에 연결하여 간신히 복구했고, 잠수부를 투입해 속도를 12노트까지 줄인 상태에서 임시 수리를 진행했다. 전방 연료 탱크와 후방 탱크를 연결하는 호스 작업도 성공하여 겨우 백 톤 남짓한 연료를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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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볼프강 제독은 5월 24일 23시 38분부터 25일 새벽 12시 37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부 해역 사령부에 “공습을 받았고, 우현이 피격당했으며, 추가 공격이 예상된다”라는 무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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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25일 새벽 1시 31분, 딮스마르크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15킬로미터 거리에서 2차례의 일제 사격을 주고받았다. 양측 모두 명중탄은 없었다. 볼프강 제독은 전날 작성했던 보고 내용—“KPII와의 짧은 교전, 프린츠 엘데른은 재급유 위해 분리, 적과의 접촉 지속 중”—을 그대로 반복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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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1시 53분, 볼프강 제독은 “대수롭지 않은 어뢰 피격”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25일은 그의 생일이었고, 함내 방송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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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2시 30분경, 소드피시 편대는 빅토리어스로 복귀했다. 그러나 페어리 풀머 2대는 연료 부족과 폭우, 그리고 빅토리어스의 유도 신호기 고장으로 인해 끝내 모함을 찾지 못하고 추락했다. 조종사 4명 중 1명만 상선에 의해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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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53==== 딮스마르크의 도주 ====
330354==== 사라진 딮스마르크와 마베라 해군의 수색 ====
331355==== 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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